[20미터 ‘설탕산’서 작업] 삼양사 하청 직원, 불법파견 인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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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제조업체인 삼양사에서 설탕 원료인 원당의 출고업무를 담당한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법원에서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받았다. 나아가 법원은 삼양사의 생산직 노동자들도 하청 직원들과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라고 판단해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비슷한 형태로 근무하는 직군에 적잖은 영향이 예상된다.
원청 공장서 설탕 출고업무 수행
20년간 하청업체 세 차례 변경
31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부(재판장 전지원 부장판사)는 전날(30일) 삼양사 하청업체 소속 직원 A·B씨가 원청인 삼양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등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소송이 시작된 지 3년4개월 만이다.
사건은 하청노동자들이 삼양사 설탕공장에서 원당 출고업무를 수행하면서 시작됐다. 애초 삼양사 직원들이 원당 출고업무를 맡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진 이후 하청업체에 업무를 넘겼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업체 2곳이 도급계약을 체결했다가 2013년부터 C사와 1년 단위로 계약을 맺었다.
1998년부터 삼양사 울산공장에서 원당 출고업무를 담당한 A씨와 B씨도 이사이 하청업체 소속만 세 차례 변경됐다. 이들은 매일 삼양사 공장에서 창고에 보관된 원당을 설탕생산공장 내로 직접 투입하는 ‘출고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원당 출고작업자는 A·B씨를 포함해 3명이 전부였다. 약 20미터 높이의 피라미드 형태로 보관된 ‘설탕산’에서 매일 1천500톤가량을 특수차량인 ‘페이로더’로 운반했다. 페이로더는 원당을 퍼담을 수 있는 대형 바스켓이 설치된 차량이다. 작업자들이 높게 쌓인 원당을 퍼서 담으면 업무속도에 맞춰 원당 투입구(게이트)가 열리고 컨베이어벨트에 자동으로 실려 공장으로 투입됐다.
원·하청, 파견법 위반 벌금형
원청 직고용 제안에 수용·퇴사
문제는 누구의 지시로 출고업무가 이뤄지는지였다. A·B씨는 하청 소속으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2년을 초과해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경우 직접고용의무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A·B씨는 2017년 10월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울산지청에 삼양사의 지휘·감독을 받는 파견노동자에 해당한다며 진정을 제기해 이듬해 파견노동자로 인정됐다. 관련자들은 형사 재판에 넘겨져 하청인 C사 대표는 파견법 위반 혐의로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 결정을 받았다. 삼양사 공장장도 2020년 12월 정식재판에서 벌금 200만원이 확정됐다.
삼양사는 고용노동부의 불법파견 결정에 따라 A·B씨에게 직접 근로계약 체결을 제안했다. B씨는 2018년 7월 1년간 계약한 뒤 해고사유가 없으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로 회사와 합의했다. 사측은 별도의 ‘로우더 운전원’이라는 직군을 만들어 B씨에게 적용했다. 반면 A씨는 권고사직을 이유로 사직서를 내고 C사를 관뒀다.
삼양사의 직접고용 제안을 받았지만, 이들은 파견 기간의 임금을 지급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2018년 11월 소송을 냈다. 다만 B씨는 소송 직전 원청에 직접 고용돼 A씨만 근로자 지위 확인을 청구했다.
원청의 지시 여부가 소송의 쟁점으로 다퉈졌다. 재판 과정에서 삼양사 정규직인 입고사무실장이 별도 과업지시서가 없이 직접 출고를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다. 설탕 제조 진행상황을 모니터하는 관제센터 담당자와 생산파트 조장들이 무전기를 이용해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원청 담당자의 지시에 따라 A·B씨는 공장 청소와 도색, 컨베이어벨트 점검 등 부수적인 업무를 담당했다.
원청 직원들과 혼재해 작업한 부분 역시 확인됐다. 게이트 개폐는 통상 원청 직원이 담당했지만, 하청작업자들이 수동으로 개폐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루 3교대의 근무시간도 삼양사 생산직 노동자들과 동일했다.
법원 “원청에 의해 실질적 통제”
직접고용 거절 “명확한 반대의사 아냐”
이를 근거로 1심은 근로자파견관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A·B씨가 원청의 구체적인 지휘·감독에 따라 원당 출고업무를 담당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원청 정규직이 A·B씨에게 원당 이동 등의 작업 지시를 수시로 했다”며 “페이로더 자격증만 있으면 단시간 내 숙달이 가능한 업무로서 해당 작업은 원청에 직접 제공됐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나아가 공장에 ‘현장대리인’이 상주하지 않고 원청의 직접적인 지시로 작업이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원청이 도급계약에서 하청에 현장대리인 선임의무를 부과하도록 정했다”며 “그런데도 하청은 현장대리인을 선임하거나 현장대리인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은 채 정규직원들이 A·B씨에게 수시로 업무를 지시했다”고 지적했다. 실질적으로 원청에 통제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출고업무가 원청 사업장에 실질적으로 속해 있다는 점도 근거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출고업무가 설탕공장의 컨베이어벨트 공정과 맞물려 있어 공장의 작업환경에 직접 연동된다고 봤다. 원청의 생산직 노동자들과 하나의 작업집단을 이룬다는 것이다. 나아가 하청이 임금을 지급하고 4대 보험료를 납부했다는 것만으로는 하청이 독립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A씨가 고용 제안을 거절하고 하청에서 퇴사해 근로자지위를 확인할 이익이 없다는 원청의 주장도 배척했다. A씨가 삼양사와의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것은 원청 생산직보다 근로조건이 열악했기 때문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파견법이 정한 ‘명시적인 고용의 반대의사’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더불어 원청이 근로자의 지위를 부정했으므로 파견 기간의 임금 차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봤다.
특히 설탕공장의 생산직 노동자들을 비교 대상 노동자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설탕공장의 작업량·작업속도에 따라 영향을 받으므로 출고업무는 생산직 근로자들과 하나의 작업집단을 이뤘다”며 “울산공장의 생산직 근로자는 A·B씨와 동종·유사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원청이 관제센터 모니터링을 통해 원·하청 구분 없이 업무지시를 한 점이 고려됐다.
재판부는 “원청은 고용의제에 따른 미지급 임금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A씨의 근로자지위 확인 청구와 원고들의 미지급 임금 청구는 이유 있다”고 판결했다. 삼양사는 1심에 불복했지만, 항소심도 1심 판단을 유지하고 원고들의 확장된 청구 금액을 인용했다.
출처 : 2022년 04월 01일 금요일, 매일노동뉴스 홍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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