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노조법 시행되면] 골든타임 ‘6개월’ 노동계는 ‘조직화’ 정부는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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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한화본사 빌딩 앞 CCTV 철탑에서 97일간 고공농성 끝에 거제도 조선소로 복귀한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은 농성을 끝낼 당시 <매일노동뉴스> 인터뷰에서 “올해 교섭에서는 반드시 한화오션(원청)을 테이블로 끌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본지 2025년 7월2일자 “[인터뷰-김형수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 “내려오고 싶지 않았다”” 기사 참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이런 노동계 요구를 반영한 법률이지만 현실이 곧바로 기대를 반영할 것으로 보긴 어렵다. 기업별 노사관계에 착근한 현실 노사관계와 인식의 변화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예상되는 변화와 쟁점을 앞서 살펴본다.
콜센터 등 외면받은 하청노동자 “원청 나와”
법 개정을 주도한 노동계는 개정이 9부 능선에 올랐을 때부터 공통된 대응이 감지됐다. 조직화다. 개정 노조법은 특수고용직과 플랫폼·프리랜서를 노동자로 추정하는 노조법 2조1호 개정에 이르진 않았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원청 교섭권에 무게를 뒀다. 법조문상 특수고용직 등도 노조 조직화와 교섭을 지속해서 시도할 수 있을 전망이지만, 조직화가 더뎠던 산업단지와 소규모 간접고용 사업장에 대한 조직화에 나설 동력이 생겼다. 민주노총은 미조직전략조직실과 산별 미조직활동가를 중심으로 조직화 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한국노총도 TF를 꾸려 조직화를 포함한 대응에 나섰다.
조직화가 중요한 이유는 원청에 교섭을 요구할 주체를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청과 하청노조 간 교섭 길이 열려도 교섭을 요구할 노조가 없다면 도루묵이다. 게다가 수많은 하청업체에 친기업 성향의 노조가 선제적으로 꾸려진다면 제도 개선 의미가 더 희석된다.
물론 현재 노동계에도 간접고용 노동자를 조직화한 노조가 다수 존재한다. 이를테면 공기업·금융기관 등의 업무를 위탁받은 콜센터노조 등이다. 조선하청 노동자를 조직화한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나 현대자동차·기아 등 완성차 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제철소 비정규직 등 노조들이 있다. 이들 비정규직 노조는 교섭을 원·하청업체와 병행할지, 원청에만 교섭을 요구할지, 공동교섭을 요구할지 등 사업장 특성에 따른 전략적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정규직 노조 입장 따라 ‘갈등’ 또는 ‘연대’
“초기업교섭 창구단일화 제외” “하청별 대표노조와 개별교섭”
이 과정에서 정규직 노조의 수용성이 쟁점으로 형성될 여지도 있다. 하청 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때 원청 노조와의 관계가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해진 이윤을 하청 노조와 나눠야 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대립적 관계 형성이 예상된다. 원청 사용자가 이를 악용할 여지도 있다. 금속노조 한 관계자는 “(원청이) 원청 노조를 향해 이윤의 잠식 문제를 강조하면서 교섭조건에 개입하려는 시도도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우려는 교섭단위 결정 과정에서 뾰족하게 불거질 수 있다. 법적으로 살펴보면 하청 노조가 원청을 대상으로 교섭 요구를 할 때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을 어디로 정할지 쟁점이 된다. 하청 노조가 원청 노조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할지, 하청 노조 간 단일화를 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완 입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은정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초기업적 노조의 초기업적 교섭에 대해서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적용을 제외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하청 관계에서는 다수의 하청 노조가 존재할 때 공통된 문제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공동교섭 형태 등 방향성에 대한 지침을 정부가 마련해 지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노동계 일각에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라는 법개정 취지를 고려하면 하청노조가 원청과 개별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기존에 발표된 학계 논문의 다수 의견이나 노동위원회 판정도 개별 하청업체 내에서만 창구단일화를 거쳐서 결정된 교섭대표노조가 원청과 개별교섭을 하면 된다는 것”이라며 “모든 하청 노조가 교섭창구 단일화를 거치게 되면 노조법 개정 취지와 원청-하청 노조 교섭제도가 무력화된다”고 말했다.
“예측가능한 노조법” 노동부 발등에 불
정부는 시행 초기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부칙상 공표한 개정조항의 시행을 유예한 6개월이 ‘골든타임’이다. 우선 과제는 지침·매뉴얼 마련이다. 사용자 판단기준과 교섭절차, 노동쟁의의 범위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정 가운데 가장 쟁점인 2조2호 사용자 범위를 보면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했는데, 구체적인 사항을 하위법령이 정하도록 위임하지 않았다. 원청이 하청노동자에게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면서도 형식적 근로계약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사용자로서 책임을 회피하면서 발생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취지다. 그간 판례로 형성된 법리를 반영한 규정이다.
다만 ‘실질적 지배력’의 의미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법 시행 이후 혼란이 불가피하다. 노조법상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단체교섭을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벌칙 조항이 있는 만큼 범위가 확정되지 않으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학계 일각에서는 사용자성 판단기준을 제시하기도 한다. 노동부 후원으로 지난 19일 열린 한국노동법학회의 ‘노동조합법의 전환점’ 토론회에서 발제를 한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자 노무가 간접사용자(원청) 사업 운영에 필수적이고 사업체계 내 편입돼 있는지 △근로자 근로조건에 대한 사용자의 개입 정도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지 △직접사용자가 간접사용자에 의해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통제를 받는지 △노동 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 교수는 이러한 징표를 모두 갖출 필요는 없더라도 이 기준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CJ대한통운 사건 등 판결을 참조해 재구성한 것이다. 반면에 일각에서는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일부 징표는 불법파견 판단 징표와 유사해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 여지를 위축할 수 있다. 교섭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한다는 노조법 개정 취지와 배치된다.
“노동쟁의 대상과 쟁의 목적 정당성은 별개”
노동쟁의의 범위도 노동부 지침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노조법 2조5호는 노동쟁의를 ‘노사 간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근로자의 지위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 및 사용자의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으로 인해 발생한 분쟁상태’로 명시했다.
그간 노조는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 같은 경영진 결정에 반대할 수 있는 합법적 통로가 없었다. 정리해고 반대를 이유로 파업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부담해야 했다.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 결정’을 노동쟁의 개념에 포함시킨 것은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 등 사안이 단순히 파업의 대상이 된다기보다, 이로 인해 발생되는 노사 분쟁을 교섭과 조정 영역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재계는 우려가 크다. 경총을 포함한 경제 6단체는 노동쟁의 대상에서 ‘사업경영상 결정’을 제외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기업의 투자 결정, 공장 해외 이전 같은 경영상 판단까지 파업 사유가 되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다.
노동부는 설명자료 등을 통해 “노동쟁의 대상은 근로조건 전반에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근로조건 결정’은 유지하면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 등을 한정해 추가한 것”이라며 “사업경영상의 결정 일반이 노동쟁의나 교섭, 쟁의행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
전문가들은 재계의 우려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법학)는 “사업경영상 결정은 폭넓은 개념인데 최소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 대해서는 근로자들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게 법 개정 취지”라며 “노동쟁의와 쟁의행위는 다른 개념으로, 노동쟁의는 국가의 조정이나 중재를 거치지 않고 (노동자가) 파업을 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와 쟁의행위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는 얘기다.
‘구체적’ 정부 지침에 우려
일각에선 “제도 정비 사회적 대화”
정부지침이 지나치게 세세한 내용까지 규율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조 교수는 “국가가 세세한 지침을 만들어서 일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노사 자율 원칙에 어긋난다”며 “국가의 역할은 노동자의 노동 3권을 침해하는 행위, 즉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처벌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도 정비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새로운 노사관계 시스템 설계를 위한 추가 입법 등을 위해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만이 아니라 국회판 사회적 대화에서 할 수도 있고, 별도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조의 역할도 주문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법 개정으로) 제도적 조건이 갖춰지더라도 노사관계는 곧 힘의 논리가 작동되기 때문에 입법 취지가 현실에서 제대로 실현되려면 노조의 역량도 중요하다”며 “산별노조·연맹이 능동적으로 전략을 짜서 교섭 관행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고용노동부는 노사 의견을 수렴하는 TF를 조만간 가동시킬 예정이다. 노동부는 노조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4일 법 시행 후속 조치로 “노사 의견을 수렴하는 TF를 시행 준비기간 동안 구성하고, 상시적으로 노동계와 경영계 의견을 수렴할 소통창구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또 “법원이 제시한 판례와 판단기준을 노동위원회와 종합 검토해 사용자성 판단 기준과 교섭 절차, 노동쟁의 범위에 대한 지침·매뉴얼을 정교하게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방고용노동청을 통한 권역별 주요 기업 진단과 교섭 과정 컨설팅 등을 토대로 상생 교섭사례도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노조법은 대화 촉진법이자 상생의 법, 노동과 함께 하는 진짜 성장법으로 무분별한 교섭이나 무제한 파업, 불법파업에 대한 무조건적 면책이 아니다”며 “정부는 노사 양쪽과 지속 소통하며 예측가능성을 확보하도록 노력할 것이며 노동계와 경영계도 자율과 책임에 기반한 새 노사관계가 정착하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 이재 · 어고은 기자, [개정 노조법 시행되면] 골든타임 ‘6개월’ 노동계는 ‘조직화’ 정부는 ‘현실화’, 2025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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