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보상액 차별'…외국 선원 울린 최저임금, 4년 뒤에나 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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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고(Dirty), 힘들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이른바 '3D 업종'에 종사하는 한국인 노동자가 줄고 있다. 그 자리는 이주노동자가 대신하고 있다. 특히 어업은 3D를 넘어 4D, 5D 업종이 됐다. 거리가 먼(Distant) 데다 꿈마저 박탈(Dreamless)되고 있어서다. 내국인 기피와 고령화에 따라 국내 연근해 어선에서 일하는 선원 10명 중 4명이 외국인이다. 이주 어선원의 중요도는 커지는데 처우는 열악하다. 이들의 상황에 대해 짚어본다.
올해 초 선원 이주노동자들이 반길 만한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한국 어선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한 외국인 선원에게도 한국인 선원과 동일한 기준으로 재해보상금을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다.
그동안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다 다쳤음에도 보상이 달랐던 게 사실이다. 국적과 언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생긴 차별이다. 안타깝지만 최근까지 벌어진 일이다. 우리의 바다 위에선 '상식', '공정', '평등'은 없었다.
판결에 눈길이 가는 배경이기도 하다. 20톤 이상의 연근해 어선에서 일하는 외국인 선원들은 국적 선원의 80% 수준에 불과한 임금을 받아왔다. 힘들고 더러워서, 그리고 위험하다며 한국인이 떠난 노동 현장을 메운 외국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한겨울 바다만큼이나 차가웠다.
2018년 3월부터 한국 업체의 35톤짜리 선박에서 선원으로 일해온 A씨는 그해 12월 그물을 끌어올리다 오른손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 손등과 손가락 뼈가 부서졌다. 2020년 4월까지 치료를 받아야 했던 A씨는 산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수협중앙회)로부터 상병급여 약 240만원과 장해급여 약 1300만원을 받았다. 수협중앙회는 쉽게 말해 A씨와 같은 외국인 선원을 모집·관리하는 책임 기관이다. 하지만 A씨가 받은 상병급여와 장해급여는 한국인 선원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이유가 있다. 법이 그렇기 때문이다. 업무상 재해 시 지급하는 재해보상금 등은 '선원 최저임금'에 따라 결정된다. 20톤 이상 연근해 어선에서 일하는 선원은 최저임금법 대신 선원법을 적용받는다.
선원법은 선원의 최저임금을 해마다 해양수산부가 발표하는 '선원 최저임금 고시'로 정하도록 한다. 그런데 특례 규정이 있다. 외국인 어선원의 최저임금은 고시와 상관없이 '노사 단체협약'에 따라 결정된다. 당사자인 이주 어선원은 배제된 채 선박 소유자단체인 수협중앙회와 노동단체인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선원노련)이 합의하는 것이다.
그 결과 대부분 외국인 어선원들은 한국 선원보다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을 받는 구조에 놓인다. 한국의 어업이 사실상 이주노동자들에게 의존하고 있음에도 이들에 대한 임금 차별이 제도적으로 시행돼온 셈이다.
선원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에 따르면 A씨가 재해보상금을 받던 시기인 2020년도 선원 최저임금은 월 221만5960원이었다. 반면 이주 어선원은 월 172만3500원을 받았다. 한국인 선원의 78%에 불과한 수준이다. 문제는 또 파생한다. 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재해보상액이 산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같은 사고를 당해도 한국인 선원보다 보상액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 1월19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김연주 판사는 A씨가 수협중앙회를 상대로 '한국인 선원의 최저임금 고시를 기준으로 장해급여 등을 지급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한국인 선원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외국인 어선원이 해당 임금 기준을 바탕으로 산재 보상에서도 차별받는 것은 위법하다고 본 것이다. 수협중앙회는 법원의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다. 내외국 선원 간 임금 격차는 업무 숙련도를 고려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게 수산업계 입장이다.
공교롭지만 이 판결이 나온 날 해수부는 국적 선원의 80% 수준인 외국인 어선원의 최저 임금을 2026년까지 동일한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발표했다. 수협중앙회, 선원노련 등과 협의를 거친 것이다. 해수부는 당장 내년부터 외국인 어선원의 임금을 매년 5%포인트씩 추가 인상한다는 방침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2년 선원 이주노동자의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해 해수부에 최저임금 인상을 권고한 지 10년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임금 상승분이 오롯이 이주 어선원의 지갑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금 상승 시 상승분을 관리업체 등과 정산해야 한다는 조항이 담긴 계약서도 더러 있다고 선원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 측은 전했다.
이에 따라 외국인 어선원의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도록 한 특례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인권위는 지난해 9월에도 이를 해수부에 권고했다. 이현서 화우공익재단 상근변호사는 "외국인 어선원에 대한 최저임금 특례 규정을 폐지, 국적에 따른 임금 차별을 즉시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 2022년 03월 07일 월요일, 뉴스1 조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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