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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판결, 그 후]① 대법원, 신의칙 범위 좁혀왔다… ‘경영상 어려움’ 판단 엄격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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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61.♡.185.172)
댓글 0건 조회 779회 작성일 22-02-1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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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6300억원. 작년 1216,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상고심에서 승소한 근로자측이 돌려받게 될 소급분 추정액이다. ‘신의칙 적용을 아예 배제하는 취지의 판결이 나온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사실상 사법부가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을 반영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3편의 기획을 통해 그간의 통상임금 판례 흐름을 정리하고, 최근 대법원 판단의 한계와 비판에 대해 분석한다. 앞으로 기업의 노사간 임금협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도 짚어본다. [편집자주]

 

통상임금 소송에서 핵심으로 꼽히는 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이다. 신의칙(信義則)이란 모든 사회 구성원이 상대방의 신뢰에 반하지 않도록 성실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민법상 대원칙을 말한다. 노동자들이 통상임금 재산정과 법정수당 추가 지급을 요구하는 사건에서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다. 그동안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은 기업 입장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적용됐다. 근로자가 합당한 권리를 주장할 지라도, 회사의 경영 상황 등을 감안해 요구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다.

 

작년 12월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신의칙 항변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법조계는 신의칙에 대한 정리가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2013년 갑을오토텍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첫 판단(경영상 어려움에 처할 정도로 추가 수당을 요구하는 행위는 권리 남용)이 나온 이후 2019년 시영운수 판결(도산 위기가 아니면 신의칙 적용 불가능) 등 신의칙의 적용범위는 좁아지고 있다.

 

갑을오토텍 경영상 어려움시영운수 도산위기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 소급분에 포함할지 여부를 놓고 다툼이 일어난 것은 2013년 자동차부품 업체 갑을오토텍 직원들이 제기한 소송부터다. 법조계에서는 갑을오토텍 사건을 발단으로 통상임금 관련 소송 판례가 쌓였고 신의칙 인정 여부를 다투는 과정에 관심이 쏠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갑을오토텍 판결에서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3년치 정기상여에 대한 소급분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며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기업이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을 지게 돼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에 처할 정도로 추가 수당을 요구하는 행위는 신의칙에 어긋난 권리 남용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회사 측은 노동자의 추가 수당 요구 등에 대한 통상임금 소송에 대해서도 신의칙을 근거로 맞섰다.

 

그러나 신의칙은 2019년 시영운수 통상임금 사건부터 엄격하게 적용됐다. 대법원은 시영운수 사건에서 사실상 도산 위기가 아니면 신의칙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판결했다.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지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문구도 더해졌다. 신의칙 원칙을 인정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축소된 셈이다.

 

회생 위기를 겪는 회사가 아닐 경우 신의칙을 적용하기가 어려워졌다. 대법원은 아시아나항공, 쌍용자동차, 한국GM 사건에서는 근로자의 임금 청구가 신의칙에 위반한다고 인정했다.

 

법무법인 율촌의 최진수 변호사는 기업이 흥망성쇠를 겪는 동안 기업 측도 일시적 어려움은 예측하고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라며 재판부는 기업의 일시적 어려움을 극복 가능한 문제라고 판단한 셈이라고 말했다.

 

현대선고 이후 법조계 신의칙 사실상 배제

 

9년 간 이어진 현대중공업의 통상임금 소송에서는 그간 신의칙 적용 범위를 좁혀왔던 대법원이 사실상 배제에 방점을 찍었다. 이는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신의칙 항변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로 요약된다.

 

대법원 3(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작년 1216일 현대중공업 근로자 10명이 낸 임금 소송의 상고심에서 사측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기업이 속한 산업계의 전체적인 동향 등 기업운영을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현대중공업 소송에서 2019신중하고 엄격하게라는 문구에다 향후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신의칙을 들어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추가했다. 기업들이 신의칙 적용을 사실상 포기해야 하는 판단이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경영상 어려움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다.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노동법 실무연구회 출신 대형로펌 변호사는 경영상 어려움이라는 판단기준을 대는 순간, 사법부에 판단할 권한이 너무 많이 생기는 것이라며 경영상 위기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사법부가 어떻게 판단하나라고 지적했다.

 

선고시점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문제도 있다. 대법원이 선고시점을 언제로 하느냐에 따라 경영상 어려움의 판단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민법상 2심 변론종결시점을 기준으로 기업을 판단해야 하는데, 심리가 이뤄지는 동안의 사정들이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파기환송심을 진행 중인 금호타이어 사건의 쟁점으로도 꼽힌다.

 

출처 : 20220209일 수요일, 조선비즈 김민정, 김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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