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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이 쓴 ‘과업지시서’가 불파 증거”…법원은 “불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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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61.♡.185.172)
댓글 0건 조회 30회 작성일 25-04-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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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자원공사의 수자원개발시설에서 정비 업무를 한 하청업체 근로자가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원청이 과업지시서를 통해 하청업체에 구체적인 업무 지시를 한 것이 확인됐지만, 법원은 원청과 하청의 업무가 구분돼 있다며 하청업체의 독립성을 인정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윤강열)는 지난 2월 14일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수자원개발시설 정비 업무를 한 하청업체 근로자 A 씨 등 5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1심과 2심의 결론이 같았다.
 
공사는 수자원개발시설 설치ㆍ정비를 위해 100% 출자해 하청업체를 설립했다. 하청업체는 2001년 민영화돼 민간법인이 됐고, 공사의 과업지시서에 따라 수자원시설 정비 업무를 담당했다. A 씨 등 하청 근로자들은 공사가 불법파견을 하고 있다며 공사 소속 정규직 근로자와의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과업지시서로 명령" 주장에도 법원은 '적법 도급'
  
하청 근로자들은 공사가 과업지시서를 통해 지휘ㆍ명령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공사의 과업지시서에는 하청 근로자에게 위임하는 업무 범위가 구체적으로 기재돼있다"며 "구체적인 정비 계획과 방법은 하청업체가 정해 불법파견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하청 근로자들이 공사에 정비일지를 제출하면 공사 감독원들은 이를 승인했다. 그럼에도 법원은 이것이 실질적인 지휘ㆍ감독이 아니라고 봤다.
 
법원은 "하청 근로자들이 공사에 정비일지를 제출한 것은 업무 특성상 용역업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상당한 지휘ㆍ명령이 아니"라며 "공사 감독원들의 지시ㆍ승인도 공사의 업무 요청을 전달한 수준으로 실질적인 지휘ㆍ감독이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번 판결처럼 원청이 작성한 과업지시서가 곧바로 불법파견의 징표가 되진 않는다. 최근 법원은 업무의 실질을 고려해 판단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법원은 2020년 현대자동차 사건과 지난해 한국도로공사 사건에서 근로자들이 과업지시서를 이유로 불법파견을 주장했지만 업무의 실질을 봐야한다며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다.
 
정동일 법률사무소 해방 대표변호사는 "간혹 과업지시서의 존재만을 이유로 불법파견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지만 원청이 과업지시서를 교부했다는 것만으로 불법파견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며 "오히려 과업지시서가 원하청 근로자의 업무 범위가 구분됐다는 증거로 사용될 수 있어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과업지시서 작성 시 원하청의 업무를 명확히 구분해 기재하고 구체적인 업무 계획, 내용을 하청업체가 정하도록 해야 불법파견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공사는 하청업체에 필요한 인원과 업무에 필요한 자격을 요구했지만, 법원은 이 역시 불법파견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공사가 업무에 투입될 근로자 수와 자격 요건을 규정했더라도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며 "공사가 관련법에 따라 용역대금 산정을 위해 투입 근로자 수와 자격요건을 명확히 전달한 것이라면 이를 이유로 불법파견이 인정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사가 참여 기술자 변경, 대체인력 투입 등을 요구했지만 이 역시 정비업무의 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공사가 작업배치권ㆍ변경결정권을 행사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하청 근로자들은 공사가 업무교육을 실시하고 표창장을 수여한 점도 지적했다. 그러나 법원은 "공사가 실시한 교육은 관련법상 강제되는 교육으로 이를 실시했다고 해서 근로자 교육 권한이 공사에게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표창장 수여도 계약기간 동안 하청 근로자의 노고에 감사를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 인사관리권 행사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정 변호사는 "기업이 불법파견 이슈를 줄이기 위해서는 하청업체에 업무를 명령하기보다 협조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근로자 선발, 교육을 명령하는 방식으로 하청업체에게 요구하면 불법파견으로 판단될 수 있다"고 했다.
 
법원은 하청업체가 특허를 갖고 있는 등 업무에 전문성 갖고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하청업체가 독립적인 엔지니어링 사업자 등록을 하고 자체 기술연구소도 가지고 있었다"며 "자체 기술연구소를 통해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권ㆍ실용실안권을 보유하기도 해 독립적인 기업조직을 가진 것이 인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사가 컴퓨터와 소모성 자재를 구입해 지급하기는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하청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공사와 하청업체는 평상시엔 공동업무를 하지 않았다. 간혹 긴급하게 공동업무를 수행할 일이 있었지만, 법원은 이것만으로 원하청을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원하청이 긴급업무만을 같이 수행해 법원이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상시적으로 공동업무를 수행했다면 원청의 직접 지휘ㆍ명령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며 "하청업체가 독자적인 권한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했음이 인정돼야 적법한 도급으로 판단될 것"이라고 했다.


출처 : 이재헌 기자, “원청이 쓴 ‘과업지시서’가 불파 증거”…법원은 “불파 아냐”, 월간노동법률, 2025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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