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소송 지는 근로복지공단, 알고보니 ‘판례 무시’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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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의 산재 판정 관련 행정소송 불복 소송과 패소율이 해마다 증가하는 가운데, 공단의 판단이 법원 판례 흐름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제 공단 자체 분석에서 법령해석 견해차이로 패소하는 비율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업무상 질병 산재 처리 기간을 대폭 단축하기 위한 방안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판례 흐름에 맞춘 공단의 산재보상 행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행정소송 지난해 491건↑, 패소율 5.1%p↑
‘업무상 질병 소송 패소’ 159건 → 273건
29일 <매일노동뉴스>가 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받은 근로복지공단의 ‘소송상황 분석 보고서’ 자료를 보면, 공단이 지난해 수행한 소송건수(행정·민사)는 7천392건으로, 2023년 6천901건 대비 491건 증가했다. 올해 7월 기준으로는 6천103건을 수행하고 있다. 공단이 공단의 소송을 분석한 내부 자료다.
공단이 수행하는 소송이 많은 만큼 패소율도 늘고 있다. 패소율은 2023년 10.1%, 지난해 13.6%, 올해 7월 14.4%로 우상향 추세다. 특히 행정소송에서 많이 패소했다. 지난해 공단 행정소송의 패소율은 18.7%로, 확정사건 2천171건 중 406건을 졌다. 2023년 패소율(13.6%) 대비 5.1%포인트 증가했다. 지난해 민사소송 패소율은 3.8%로, 확정사건 1천127건 중 43건 패소했다. 2023년 패소율(4.4%) 대비 0.6%포인트 줄었다.
지난해 공단의 소송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단연 업무상 질병이다. 전체 행정소송에서 72.7%다. 업무상 질병과 업무상 사고 소송을 비교해 보면 더 극명해진다. 공단 패소사건 중 업무상 질병이 273건, 업무상 사고가 122건이었다. 2023년 159건, 82건과 비교하면 업무상 질병 소송에서 지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업무상 질병 공단 패소사건을 질병별로 보면 소음성 난청이 84건(점유율 20.7%)으로 가장 많고, 뇌심혈관계 질환 65건(16%), 진폐증 56건(13.8%)이 뒤를 이었다. 업무상 사고는 패소사건 122건 가운데 작업시간 중 사고가 89건(21.9%)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출퇴근 중 사고 16건(3.9%), 자살 11건(2.7%) 순이었다.
의학적 증거에 지나친 의존, 판례는 외면
‘법령해석 견해차’로 패소, 21.5% → 35.5%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 상병과 업무상 인과관계 여부를 판단할 때 의학적 증거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지적은 계속 제기돼 왔다. 공단의 판단이 법원에서 쌓아온 판례와 멀어진 배경이다. 공단이 자체 분석한 내용도 이를 뒷받침한다.
공단의 패소 원인을 들여다보면 지난해 406건의 행정소송 패소사건 중 ‘사실관계 및 증거판단의 견해차이’가 64.3%, ‘법령해석의 견해 차이’가 35.5%를 차지했다. 2023년에는 250건의 패소건 중 사실관계 및 증거판단의 견해 차이가 79.6%, 법령해석의 견해 차이 21.5%였던 것과 비교할 때, 패소사건 중 법령해석의 견해 차이 점유율이 14%포인트 증가했다.
박해철 의원은 “공단이 업무상 사고 대비 업무상 질병과 관련한 판단을 소극적 또는 법원 판례와 다른 판단을 계속 해 왔음을 반증하는 통계”라며 “비록 점유율 비교지만 공단이 법원 판례의 경향을 고려하지 않고 산재를 인정하지 않아 산재 유가족에게 고통을 전가해 왔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단이 외면한 판례는 주로 의학적 증명에만 기대기보다는 종합적인 판단으로 업무와 질병 간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내용이다, 2022년 공단은 삼성디스플레이 노동자의 급성 골수성 백혈병 요양급여를 불승인했는데, 서울행정법원이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본 대법원 판결을 참고해 판단을 뒤집었다.
또 공단은 18년간 일한 버스기사의 척추질환을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최근 재판부가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질병이나 기존 질병이 직무의 과중 등이 원인이 돼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때에도 인과관계가 증명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법리를 적용해 공단의 판단을 부정하기도 했다.
노동부 12월까지 판례분석 연구용역
박해철 “노동자·유족에 고통, 바로잡아야”
정부는 업무상 질병 산재 처리기간 단축을 위해 특별진찰·역학조사 생략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산재 불인정 뒤 이어지는 행정소송 역시 산재 피해노동자와 유족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원인이기 때문에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고용노동부는 공단의 소송 남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판례분석에 주력할 계획이다. 정부가 1일 발표한 ‘업무상 질병 산재 처리 기간 단축 방안’에는 업무상 질병의 행정소송 판례를 분석해 질병별 반복 패소 원인을 진단·유형화하고, 패소율이 높은 질병에 대해서는 인정기준을 재정비·합리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공단이 행정소송에서 패소했을 때 상소(항소·상고) 제기 기준을 마련하는 등 상소 제기를 합리적으로 관리하겠다고도 했다.
판례 분석과 관련해서는 12월까지 연구용역을 진행하는데, 급하게 추진된다는 우려도 있다. 조승규 공인노무사(노무사사무소 씨앗)는 “연구용역은 보통 연초에 시작해 연말에 끝나는데, 빨리 추진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조금 빠듯한 감이 있어 판례 분석이 잘 될지 약간의 걱정은 있다”며 “연구용역을 하시는 분들이 공단의 판정과 판례가 다른 부분을 조목조목 잘 짚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해철 의원은 “공단이 업무상 질병을 소극적으로 판단해 산재노동자와 유가족들의 기다림은 길어져만 갔고, 고질적인 문제가 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며 “앞으로의 연구용역 등 공단과 노동부의 대책 이행 과정을 꼼꼼히 살펴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 강한님 기자, 산재소송 지는 근로복지공단, 알고보니 ‘판례 무시’ 때문, 매일노동뉴스, 2025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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